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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마을 유래비 및 공적비 제막식

작성자 홍보담당관 작성일시 2021/10/03 10:52
조회수 93
광복마을 유래비 및 공적비 제막식

광주 남구는 1970년대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에 조성한 광복촌 마을에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를 설치했다.
남구는 “주월동 광복마을의 유래와 그곳에 거주했던 독립 운동가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26일 주월동 푸른길 광복촌 광장에서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 제막식’ 행사를 개최했다."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 설치는 지난해 주월1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제안사업에 따른 것으로,
그간 남구는 광복마을 및 독립 유공자에 대한 사료 조사와 연구 용역을 거쳐 이곳 마을에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를 설치하게 됐다.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광복촌은 1976년도부터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을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다.
당시 집을 지을 때 소요된 비용은 200만원 가량으로, 이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광복촌에는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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